여행, 하이킹, 등산, 스포츠 등 여가활동에 관한 글들을 자유롭게 올려 서로 정보를 나눠갖는 공간입니다.
 
작성일 : 16-04-27 18:24
[기타] 10년전 산행후기 몇 꼭지
 글쓴이 : 왕십리
조회 : 2,227  
아래 나이스한님의 글에서, 
뭉게구름님, 하이웨이님과 산행에 대한 수다를 안주로 맥주를 마시며 등반후기 내지 수필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다
길래, 문득 옛날 자료를 뒤적거리니 무려 10년 전에 끄적거렸던 제 산행후기가 있네요.  
잠시 추억에 젖었다가 그 후기에서 몇 꼭지 추려 올려봅니다. 글솜씨 나무라지 마시고 요따위의 후기도 있구나 
하고 재미삼아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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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좌를 꿈꾸며

1. 프롤로그
이민을 와서 가본 곳이라고는 밴프, 레이크루이즈, 드럼헬러 정도였다가 산악회 광고를 보고 록키에 맛을 들이기 시작했다. 서울에 살면서도 한강 유람선 타 본적도 63빌딩에 올라가 본 적도 없었으니 나의 게으름이란 그 끝을 알 수 없었는데, 참으로 희한한 것이 한 번 발을 담근 록키는 염료가 흰천에 번져나가듯이 이제는 온 몸 곳곳까지 물들어 마치 마약에 중독이나 된 듯 발길을 돌리기가 여간 어려워 진 것이 아니어서 시간만 나면 산행 생각에 빠지곤 하게 되었다. 

더욱이 아이들이 어느덧 많이 성장하여 이제 곧 세상 속으로 날아가 버릴텐데, 지금이라도 함께 하지 않으면 언제 모든 식구가 같은 시간과 기억과 추억을 공유할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더욱 온 식구의 산행을 재촉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뿐만 아니라 기러기아빠라는 소리를 들으며 3년이나 떨어져 지낸 시절이 안타까워서라도 아이들과 함께 하고 싶어서 더욱 그렇고, 아이들이 내 삶의 일부였고 지금도 일부인 것처럼 내 아이들에게 함께 했던 기억들을 가슴 속에 선명하게 간직하게 하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결국 재작년 가을, 아내와 아들과 함께 시작한 산행이 작년부터는 딸아이까지 합세하여 매주 토요일 우리 가족의 당연한 가정사가 되어버렸다. 하이킹이 정상까지의 산행으로 바뀌면서 어려워졌지만, 그럴수록 아이들도 인내심을 키워가는 것 같고, 체력도 눈에 띄게 좋아졌고, 모두 협력을 해야 산행이 쉬워지고 안전해지는 것을 보며 협동심이나 타인에 대한 배려를 배우며 마음을 넓게 열어가는 것 같아서 너무 반가웠다. 

2.
해발 2,665m의 The Wedge
오늘은 40번 도로를 남쪽에서 올라가기로 한다. 
집에서 Longview trail을 따라서 30여분을 달리니 작은 시골마을처럼 정겹게 보이는 Longview에 다다른다. 다시 541번 도로를 따라 Kananaskis Country로 향하니 중간에 방목한 소떼들이 도로를 차지하고 비켜서질 않아서 마음이 급해진다. 이른 아침이라서 지나는 차량들이 없다보니 무스도 몇 마리 길가까지 나와 풀을 뜯으며 지나가는 우리를 흘깃거릴뿐 달아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주변 경치에 몇번 감탄하다 보니 어느새 Peter Lougheed Provincial Park를 지나고 캘거리에서 1번 하이웨이를 이용하는 다른 일행보다 먼저 Wedge Pond 주차장에 도착한다. 

신발도 미리 갈아신으며 준비하는 동안 캘거리에서 출발한 차량들이 속속 도착한다. 주차장에 모두 모여 인원을 점검하니 모두 19명,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다.  모두 모여 L님의 자일 묶는 방법 등 안전에 관한 설명을 듣고 나니 오전 9시 30분. Wedge Pond 옆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Pond에서 올려다 보는 산은 정상이 감추어져 있고 산등성이에는 하얗게 눈이 보인다. 며칠 전 날이 흐리고 비가 내렸는데 아마도 그 탓이리리라. 그래도 기온이 낮지 않아서 다행이다. 
Pond를 지나면서 산으로 오르는 길을 찾다가 입구를 지나쳐 다시 되돌아 오고, 딸아이가 나무에 묶인 붉은 리본을 발견하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사람이 많이 오지 않는지 트레일이 선명하지 않아 나무 숲을 관통하다보니 매우 번잡스럽다. ‘계곡의 drainage를 따라 올라야 하는데’ 하면서 걱정을 하다보니 대장과 선두는 어느새 시냇물이 졸졸거리며 흐르는 계곡가를 오르고 있단다. 계곡이라 그늘이 진 탓에 얼마 오르지 않아서부터 눈길이 시작된다. 질척거리거나 많이 미끄럽지는 않지만 종종 발목 위까지 눈이 차는 탓에 발목사이로 눈이 들어와 양말이 조금씩 젖어들기 시작한다. 
오늘이 두번째 산행이신 아주머님 한 분이 뒤처지기 시작한다. J님이 무전기 하나를 챙겨 뒤로 남으시며 그 아주머님을 돕기로 하고 다른 일행들은 속도만을 늦춘채 계속 오르기로 한다. 깊은 숲길을 오르며 선두와의 간격도 확인할 겸, 곰 등의 짐승을 경계도 할 겸 호루라기를 가진 몇 분들은 주기적으로 힘차게 호루라기를 분다. 눈 위에 선명하고 깊숙히 찍힌 앞사람 발자국을 더듬으며 오르다보니 선선한 그늘인데도 땀이 차기 시작한다. 
숲을 벗어나니 수목한계선을 지난 듯 나무들이 사라지고 간간이 아주 낮게 자란 약간의 침엽수들과 풀들만이 황량한 비탈에 치켜 서 있다. 지그재그로 비탈을 오르며 능선으로 우회하며 향하는데 몸이 빠른 E님과 아내가 비탈을 곧바로 직선으로 치고 오른다. 나머지는 뒤에 처졌던 아주머니와 J님이 오르기를 기다리며 쉬기로 한다. 
K님이 배낭에서 달걀상자를 꺼내시어 뚜껑을 열자 옴폭파인 달걀상자의 골짜기마다 하얀 찹쌀떡들이 소담스럽게 담겨져 있다. 다들 경탄하며 침을 삼키는데 한바퀴 휘도시며 나누어 주신다. 집에서 직접 만드셨다는데 그 맛이 정말 일품이어서 감사해마지 않았는데, 산 위의 풍광과 곁들이니 천상에서 먹는 음식이 이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북서쪽 비탈을 모두 지나 능선에 올라서서 햇볕을 받기 시작하니 온몸이 따스하고 기분이 몹시 상쾌해진다. 그렇지만 따사한 햇볕 아래인데도 고도가 있어서인지 기온이 낮고 눈이 간간이 무릎이상 빠질정도로 잔뜩 쌓여 있다. 시간은 이미 12시가 다 되어 가고 정상은 아직도 한참인데 눈까지 쌓여 걱정이 앞선다. 일단 오르는 도중에 식사를 할 만한 장소를 확보해보기로 하고 눈위에 서서 간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한다. 새로 오신 분과 뒤로 조금씩 처지며 힘들어 하시는 아주머니를 남기고 다시 오르기 시작한다. 한 고비의 둔덕을 오르자 정상이 선명히 그러나 우뚝하게 보이고 햇볕아래 풀밭이 조금 드러나 있는 평지가 보인다. 그러나 정상이 아직 많이 남아 있고 시간이 과히 지체되지 않아, 조금 더 오르면서 정상밑 암벽 근처에서 장소를 확보하고 베이스조는 남아 정상공격조가 정상을 다녀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한다. 뒤처졌던 아주머니와 처음 오신 분도 땀을 비오듯이 쏟으시면서도 꾸준하게 오르고 계셔서 한편으로는 안타깝기도 하지만 감사한 마음이 든다. 등성이가 끝나는 곳까지 눈길을 헤치고 오르니 rockband가 거의 수직으로 솟아 암벽처럼 서 있다. 아이들 둘과 어른 몇명 등 7명이 남기로 하고 12명이 몇 팀으로 나뉘어 바위에 달라붙기 시작한다. 

그러나 바위가 날카로운 반면 쉽게 부서져서 안전한 확보가 상당히 곤란하다. 아들녀석과 아내는 이미 한 고비를 넘어 올라섰는데, 남을까 말까를 망설이다 뒤늦게 올라가겠다고 따라나선 딸아이와 나중에 오르다보니 위에서 오르는 사람들 때문에 굴러 떨어지는 돌들이 머리위로 쏟아진다. 바위에 몸을 바짝 기대고 피해 있는다고 있었지만 결국 딸아이가 몇 개를 머리와 어깨에 맞고 말았다. 딸아이에게 남아 있으라 했지만 무슨 생각을 했는지 부득부득 오르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결국 앞사람들이 위에서 자리를 확보하고 던져준 자일에 딸아이를 먼저 올려보내고 나도 자일에 몸을 맡긴다. 7-8미터 높이의 바위틈과 벽을 자일에 의지한 채 기어오르니 대장이 기념 촬영을 한다며 사람좋은 웃음을 웃는다. 

가파른 바위 산으로 트레일이 나 있었을텐데 군데군데가 눈이 수북히 쌓여 분간이 가질 않는다. 그렇다고 마냥 눈길로 걸을수도 없고, ridge 끝으로만 갈 수도 없어서 이리저리 발을 옮기며 걷는데 앞에서 아내의 비명이 들려서 고개를 드니 위 쪽에서 트레바스하던 아들이 30여미터를 미끄러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직선거리로도 수십미터가 떨어져 있으니 뭐 어떻게 해 볼 도리는 없지만 그래도 조심하라고 소리라도 질러 본다. 어느덧 정지한 녀석이 움직이질 않는다. 목이 터져라고 이름을 부르며 안부를 묻는다. 아내와 주변 사람들도 걱정하며 안전부절들이다. 한참 후(아마 실제로는 몇 초 안되었으리라) 부시시 몸을 일으키는 녀석이 괜찮다는 신호를 보내온다. 매주말 산행을 했지만 처음으로 아찔했던 순간이었다. 그렇지만 잠시 후 아들이 원래 있던 위쪽의 일행이 움직이자 다시 돌무더기가 흐르기 시작하더니 빠른 속도로 굴러내리며 돌사태를 일으키는데 아들이 있는 방향이다. 모두들 “Rock!!”이라고 고함을 치는데 아들 녀석이 힐끗 위를 보더니 얼른 돌아서서 주저 앉는다. 제딴에도 뒤에 맨 배낭으로 몸을 막으며 충돌면적을 줄이고자 했나보다. 하지만 나는 아무말도 튀어나오지 않으며, 소설이나 영화의 한장면과 거짓말처럼 똑같이 머리 속에서 그 짧은 순간에 엄청난 생각들이 스치는 것이다. 천만 다행으로 큰 바위 덩어리 하나와 대부분의 돌들은 아이의 곁을 지나치고 잔돌 몇 개가 아이의 머리와 등으로 덮친다. 여기저기서 고함과 탄성이 터졌지만 내 귀에는 잠시 정적이 머문다. 결국 다시 일어선 아이가 안전한 장소를 확보할 때까지 위에서 대기하던 동료들이 움직임을 멈추고 나도 정상으로의 걸음을 옮기기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수분 후 north peak의 옆으로 정상에 올라서니 한 사람이 서 있을 공간도 충분치 않을 정도로 날카로운 두세뼘 정도 넓이의 정상 ridge가 south peak를 향하는데 그나마 반이상은 눈으로 덮여 있다. 산이름 그대로 도끼날을 세워 놓은 듯한 날카로운 ridge를 엉거주춤 건너니 아들이 한켠에 앉아 있다. 몇마디 위로를 하고 단체 사진을 찍기로 한다. 공간이 좁으니 모여서기도 마땅치않다. 양쪽 모두 깍아지른 듯한 낭떠러지다. 오후 2시가 이미 넘어섰고, 아래 기다리는 팀에게 무전으로 정상 정복의 소식을 전하고 하산을 알리니 일부 인원이 식사를 먼저하고 하산을 시작했다는 소식이다. 기다리기도 지루하고 기온도 차가워 잘 판단했다는 생각이 든다. 식사하려면 아직도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아서 점심으로 김밥을 준비하신 분들이 김밥을 꺼내어 함께 간단히 요기라도 하자신다. 
모두들 칼벼랑 끝 같은 정상에 서서 김밥 몇개로 허기를 달랜다. 아들 녀석을 선두로 드디어 하산을 시작한다. 암벽에 이르러 L님의 지휘로 자일을 내리고 굴러떨어지는 돌에 다치지 않도록 2-3사람씩 팀을 이루어 하산을 하다보니 시간이 한참이나 걸린다. E님은 위에서 아래가 보이지 않은 채 암벽을 하산하는 사람들에게 방향을 알려주고 L님과 S님은 자일의 앵커를 하시고 앞서 내려간 사람들은 구르는 돌을 피해 선 채 발 딛을 곳을 알려주고, 모두가 하나가 된다. 암벽을 내려서자 식사를 하기로 한 풀밭까지는 눈길이다. 모두 펄쩍펄쩍 뛰며 눈길을 내려오니 점점 몸은 더워지고 속도가 빨라진다. 무릎 아래는 신발 속까지 눈으로 흠뻑 젖었고, 미끄러지며 눈을 짚었던 손과 장갑은 물에 담궜던 듯하다. 

풀밭에서 기다리던 S님의 아이들과 K님이 반갑게 우리를 맞아주신다. 그러자 S님이 배낭에서 버너와 무쇠솥을 꺼내며 부대찌개를 준비하셨다고 해 모두를 놀란다. 아니나 다를까, 육수통과 잘 다듬어진 건더기통(쏘세지, 콩나물, 두부, 햄 등등) 그리고 양념장을 꺼내시는게 아닌가. 옹기종기 둘러서서 여러가지 반찬과 과일과 그리고 얼큰한 부대찌게에 커피까지. 누군가 말한다.
“이 험준한 록키산맥 위에서 부대찌게 끓여 먹어본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 그래!”
오후 4시 30분.

3.
어젯밤부터, 아니 사실은 며칠 전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올해 첫 산행을 기다리며 일기예보 사이트를 들락거렸지만, 여전히 비와 눈의 예보가 바뀌지 않더니만 기어이 아침에 진눈깨비다. 어제까지만 해도 푸근하던 날씨가 0도까지 곤두박질하더니 비에 눈까지 섞여 내린다. 푸념과 걱정이 앞선다. 마누라가 없는 탓에 아침부터 마음이 바쁘다. 밥솥을 얹고, 사무실 문을 열고, 손님들이 마실 커피를 준비하고, 아침과 도시락 반찬 준비를 시작하니 큰아이가 주섬주섬 옷을 꿰차고 내려온다. 큰아이에게 일을 넘기고 사무실로 다시 나와 이것 저것 준비를 하고. 

아침식사 후 차의 시동을 걸며 출발하는 동안에도 진눈깨비는 여전히 심각한 상태다. 도중에 L님을 모시고 약속된 한국식품점 앞에 도착하니 아무도 없다. 슬그머니 마음 속으로 걱정이 된다. 날씨 탓이거나 홍보가 짧았던 탓에 인원이 너무 초라해지는 것은 아닌지. 잠시 후 한 두대씩 눈속을 뚫고 주차장으로 들어서는 모습을 보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날씨는 여전히 눈발이 기승을 부리는데 차를 나누어 타고 드디어 2006년의 정기산행을 시작한다. 
G님의 강력한(?) 주장에 힘입어 Allen Bill Pond에 주차를 하고 워밍업으로 Fullerton Loop Trail을 돌기로 한다. 눈발은 여전하지만 산행 전까지와의 마음과는 달리 포근한 느낌이 든다. 상큼하게 치솟아 오르는 침엽수들 사이로 공간을 한껏 메우며 내리는 소담스러운 눈이 사위를 고요하게 한다. 그야말로 춘설(春雪) 난분분(亂紛紛)하고 눈꽃이 참으로 흐드러지게 피었다. 삼삼오오 무리지어 이야기를 나누며 트레일을 따른다. 길을 따라 점점이 새겨진 앞선 발자국을 쫓기도 하다가 가끔은 고개를 치켜들고 얼굴로 쏟아지는 눈발을 느껴도 보면서 잠시 look-out에서 목을 축인다. 이러다가 시작도 전에 기운을 빼는건 아닌지, 겨울동안 cross country ski를 몇 번 타면서 운동에 게으르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산은 내게 늘 그랬던 것처럼 만만치가 않다. 
트레일을 도는데 1시간여를 보내고 주차장으로 귀환하여 오늘의 목적지인 Prairie Mt.을 향한다. 

Elbow Fall 입구 66번 도로의 winter gate앞에 도착하여 배낭을 추스리며 산행준비를 하는데 눈발과 바람이 더욱 거세진다. 제대로 산행을 할지 불안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비가 아니라서 조금은 위안이 된다. Y님의 부인과 따님이 갑자기 몸이 불편하여 먼저 캘거리로 돌아가고, 회장을 선두로 하여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오늘로 3번째인 Prairie Mt.이다. Rocky의 산들 중에서 3번 이상 가보는 첫 번째 산이다. 도로에서 산으로 치고 오르기 시작하자 아직은 눈이 쌓여있지 않아서 걸을 만하다. 나무가지들 사이로 하늘을 보니 눈발은 여전히 오락가락을 반복하고, 오를수록 숨은 턱까지 차오르고. 그래도 수줍은 듯 파란 하늘이 구름사이로 잠깐씩 몸을 내비치더니 눈발이 잦아들기 시작한다. 오후부터 날이 갤거라는 일기예보가 아직도 귓가를 맴도는데. 
몇 차례의 휴식과 이미 하산하고 있는 몇몇 등반객들과 마주치고 나서야 수목한계선을 벗어난다. 눈발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지만, 기온은 낮고 바람이 때때로 강하게 불어와 몸을 후빈다. 자켓의 지퍼를 한껏 올리고 후드를 다시 뒤집어쓴다. 정상이 빤히 바라보이는 능성의 나무 몇 그루 곁에서 시산제를 준비한다. 
애써들 준비하신 그 마음과 정성, 힘들게 지고 올라오신 그 봉사와 기원의 마음으로 제를 올린다. 초와 향과 사기잔까지 준비하신 J님의 치밀함이 축문을 하시던 그 낭랑한 목소리와 함께 더욱 돋보이고. 겁 없이 산행을 시작했던 작년 한 해처럼 올해도 그 어떤 작은 사고라도 단 한번도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만세 삼창과 함께 Prairie에서 Kananaskis를 따라 온 Rocky에 퍼져나가고 있음을 본다. 음복을 하면서 아침햇살과 소주를 배합해 제조한 막걸리에 감격하고, 2시간여를 삶았다는 G님의 돼지고기와 고추가루가 흠씬 배어있는 겉절이 맛에 도취되어 고추물이 드는지도 모르면서 손가락을 빨아대고, 적당히 굳어 고소해진 시루떡으로 공복을 채우고, 결국 새벽부터 설쳐대며 준비한 도시락은 배낭에서 꺼내지도 못하고 체력단련용 모래주머니가 되고 마나보다. 

식어가는 몸과 차가운 바람을 핑계로 서둘러 자리를 정돈하고 정상으로 향한다. 정상에서 주위의 경관을 둘러보면서 잠시 숨을 고르고 단체사진을 찍으며 한바탕 웃음을 웃는다. 
이제부터는 하산길이다. 더 이상 눈은 오지 않고, 다만 경사가 급하고 눈이 쌓여 있는 하산길이 만만치 않아 등산화 바닥이 유난히 미끄러운 몇몇 동료들의 고생이 만만치않다. 그래도 하산 길은 언제나 아쉬움과 성취감이 교차한다.  여전히 L님의 요들송이 귀를 간지르고, 도란도란 하산 길의 담소는 맘을 편하게 한다. 어느덧 눈 아래로 급하게 굽이치는 Elbow River의 물줄기가 보인다. 이제 거의 다 내려온 것이다. 
하늘은 이제 구름을 모두 걷어내고 푸르다 못해 눈이 시리다. 공사로 인해 철망이 처진 Elbow Fall day Use Area대신 입구 주변 강가로 내려가서 커피 물을 얹고 과일을 깎고 여기저기 편평한 바위 돌에 앉아 뒷이야기가 한참이다. 향긋한 커피를 한 잔씩 비우며, 웃음소리가 건강하게 계곡을 채우는데 시간은 오후 다섯시를 넘어선다.  다시 차에 올라 캘거리로 향한다. 오후 늦게 쾌청해진 하늘을 원망도 해보지만, 그래도 뒤늦게나마 겨울산행의 정취를 느껴볼 수 있었음에 감사하기로 한다. 집합장소였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다음주를 기약하며 나누는 악수와 인사말에 아쉬움이 진하게 묻어난다. 

좋은 향기, 좋은 사람들, 좋은 산들..... 어디선가 귀에 익은 광고 카피가 불현듯 떠오른다. 

4. 에필로그
비록 늦게 시작한 산행이지만 벌써 작년부터 지금까지 정복한 록키의 봉우리들이 40개가 넘어서고 있다. 
얼마 후면 딸아이부터 시작해서 아들녀석까지 나와 아내의 곁을 떠나겠지만 그래도 아내와 나는 계속 산을 오를 생각이다. 비록 타향에서 살고는 있지만 그래도 하늘이 주신 선물이 아름다운 자연 록키가 아닌가? 또한 우리는 얼마나 운좋은 사람들인가, 캘거리에 산다는 것이. 세계에서 유명한 Canadian Rocky가 바로 지척이니 말이다.  

이제 나는 새로운 꿈을 꾼다. 몇 년 후 내가 오른 봉우리들이 100개가 넘어서는 그 순간을. 그리곤 다시 꿈을 꿀 것이다. 체력이 다하는 날까지 200, 300개의 봉우리들을 오를 것이라고. 그리하여 나의 아이들이 그들의 꿈을 이루어가는 동안, 아빠도 여전히 그들의 곁에서 무언가를 이루어가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늘상 보여주고 싶다. 

오늘도 내일의 산행을 위해 차곡차곡 배낭을 꾸린다. 

작은세상 16-04-27 18:50
 
ㅎㅎ 록키산 초년병 시절의 군기 바짝 든 모습이 읽어집니다.
모든 것이 생소하니 지금으로보면 아무것도 아닌 긴장감이 느껴지는데
오히려 그게 더 좋아보입니다.

록키를 오르내리면 누구나 시인이 되고 소설가도 되고(구라쟁이 말입니다^^)
사진작가에 수필가가 되죠.  대자연 록키가 그리 만들어 주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내면에 감추인 예술 본능을 자극하는거죠.

거칠고 때묻지 않은 untamed 자연은 우리로 좋은 관찰자가 되게하고
풀한포기 꽃 한 송이에 네트워킹된 생명의 신비에 감탄하게 합니다.

온고이지신 맞네요.
다시금 그 옛날 초년병 시절의 순수한 등산가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게하는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그런데 담부턴 행간 뛰어쓰기를 해주세요.
10년 세월에 읽는 눈이 옛날 같지 않아요 ㅋㅋ
어지러워 힘들었어여^^
     
왕십리 16-04-27 19:31
 
맞아요. 군기가 엄청나던 시절이었죠. 가끔은 그 때를 돌아보기도 합니다.

예전에 있던 걸 그냥 카피해 넣었더니 글자크기나 행간의 넓이가 잘 조절이 안되네요. ㅎㅎ
새겨서 읽으셔요. (배짱입니다.ㅋㅋ)
뭉게구름 16-04-28 00:19
 
10년전이면 아으 우리가 돌도 씹어먹을 때군요. 아으.  예전에 왕십리님 모습 볼 수 있어서 반갑네요.  100좌 하셨나요?

저두 첫해 (2010인가) 에는 가고 싶은 산이 많아서 그걸 헤아리기도 했는데, 딱 일년 지나고 나니, 땡중이 되어  모자이크 처리되는 물건 반입에만 머리를 쓰던 흑역사가 있네요. 호호호
     
왕십리 16-04-28 11:58
 
아~ 몸이 딱 10년전만 같으면, 지금 날아다닐텐데요. ㅎㅎ

꼭 100좌의 목표를 이루겠다고 고집한 건 아니지만 그동안 다녀온 산들을 정리해놓는 습관이 있죠.
산행을 한 건 당연히 200번 가까이 되지만, 중복된 곳이나 오르다 만 곳, 일반 하이킹들을 제외하면 이제
100군데가 조금 넘었네요. 그러니 아직도 갈 곳이 무진장 남아 있다는거죠.
언제까지 산을 오를 수 있을진 모르지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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