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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6-02 17:12
[여행] 시애틀의 잠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
 글쓴이 : 작은 세상
조회 : 7,099  

여행은 낯선 곳으로 떠나는 것 만으로도 족하다.
그러나 그곳에 멋진 볼거리와 푸짐한 먹거리가 있다면 금상첨화겠고
문화와 역사가 있다면 더할나위가 없겠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적으로는 한 번도 안가보았지만
유럽은 역시 여행지로서 세계 최고의 매력을 지녔음에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수천년의 문화와 역사적인 전통, 그리고 각국마다의 고유함에다 풍성한 볼거리, 먹거리까지..
그럼에도 미국이 내게 매력적인 여행지인것은
우선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이점과 비록 문화적인 취약함에도 불구하고
볼거리와 먹거리에 있어서의 경쟁력이 뛰어나기 때문인 것 같다.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유럽과 같이 수 천년의 역사를 담고 있진 않지만
그래서 더욱더 불과 수백년의 짧은 역사라는 취약함을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보완하는 바
전통을 철저히 중시하고 보존하려는 것이 그것이다.

비근한 예로 북미도시 곳곳에는 불과 100년 남짓하지만 옛풍을 멋드러지게 살린 건물들을
Heritage 라는 이름을 붙여 자랑스럽게 보존하고 관광상품화 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북미 땅에 초기정착하는 과정에서의 여러가지 역사적인 자료와 유품들,
건물들과 그 흔적들을 다양하게 보존하고 전시하며 교육자료로, 관광상품으로 활용한다.
불과 100년 남짓한 것으로.

무엇보다도 북미에서의 빼놓을 수 없는 문화는 바로 원주민(인디언)들의 것이다.
수만년동안 이 땅에서 살아오며 일구어온 그들만의 역사와 문화를 비록 박물관의 형태이지만
매우 깊이 있는 연구와 함께 보존하고 재현하여 북미의 매우 독특한 문화 및 역사 아이콘으로서
자랑스럽게 정착을 시켰다. 그래서 북미에는 가는 곳마다 원주민 관련 박물관을 볼 수 있다.

시애틀 역시 많은 원주민 박물관과 함께 심지어 불이탄 화재의 현장을 그대로 두어
지하도시라는 이름으로 옛모습을 보존하면서 관광상품화 하고 있었다.
시애틀이란 이름이 엣 인디언 추장의 이름에서 비롯된 것이고 보면.

물론 시애틀은 세계최대 항공사인 보잉을 보유하고 전통적으로 목재 산업의 집산지이며,
최근에는 마이크로소프트사를 비롯한 첨단 IT산업의 핵으로서도 유명한 현대적 도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 곳곳에 옛것을 보존하고 중시하려는 의지가 배어 있었다.

시애틀은  LA, SF 와 함께 서북미의 주 관문 중의 하나로 진한 커피향이 잘 어울리는 물의 도시이다.
복잡한 리아시스식 해안선이 도시 및 인근 지역 구석구석을 파고 들어 수상 도시로서의 여러 풍미를
맛보게 하는 가운데 거리는 잘 조성된 녹색의 가로수들과 함께 고층 빌딩들이 어우러져 
도시를 세련되게 꾸미고 있었다.

시애틀이 캘거리에서 약간 먼듯햇지만 자동차로 여행 할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이
큰 매력 중의 하나였다. 자동차 운전을 좋아하고 길을 따라 다니는 여행을 꿈꾸는 나로서는
더할 나위없이 행복한 여행이었다.

특히 오는 날은 오후 1시쯤 출발하여 13시간동안 거의 쉬지 않고 운전하는 강행군이었지만
와싱턴주 및 아이다호 주의 여러 도시와 마을들을 구경하며 멋진 산악지대를 감상하며 운전하는 것은
전혀 피로하지 않은 즐거운 일이었다.

하늘아래 또다른 곳에서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을 바라본다는 것에서 야릇한 흥분마저 느끼는 나.
이처럼 낯선 미지의 길을 운전해 가는 것은  마치 인생을 드라마틱하게 살아가는 듯한 착각 속에 빠져 
갖가지 상상의 나래를 펴고 스쳐 지나가는 주변의 온갖 것들로부터 살아 숨쉬는 이 세상의 생생한 감동을 전해 받는 것이다.

밴쿠버까지는 최소 10시간 이상 운전해 가야한다. 따라서 늘 이렇게 중간 쯤에서 하루밤을 묵게 되는데
이번에도 역시 Kamloops라는 BC 주의 중견도시에서 잠을 자게 되었다.
여행할 때마다 이런 저런 호텔을 경험하는 것은 분명 여행의 큰 즐거움 중의 하나이다.
오늘은 또 어떤 모양, 어떤 분위기의 호텔일까..하는.

Kamloops는 BC주 내륙에 위치한 도시로 이렇듯 아름다웠다. 두 번 째 보는 것이지만
벌써 친근함이 느껴지는데 근래 많은 캘거리언들이 은퇴후 노후생활을 보내는 곳으로 정하고 있다.
온화한 날씨와 아름다운 강과 산이 어우러진 채 멋지고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캐나다 시민권을 획득한 이후 첫 육로로의 미국 여행이었다.
언제나 미국 여행은 기분나빴다. 국경에서의 기분나쁜 검색 및 심사때문이다.

이민국 직원의 고압적인 자세와 눈빛은 미국 여행을 갈 때마다
항상 나로 기분을 잡치게 만드는 큰 요인이었는데
이것이 캐나다 여권을 소지한 이후로는 확실히 달라졌다. 그게 오히려 더 기분 나쁘다.

그러나 육로로 미국에 들어가는 것은 확실히 더 쉬웠다.
아마도 뒤에 줄줄이 서 있는 차량들이 다소 부담스러웠을까...
캐나다 여권을 보여주자 간단히 신원을 확인한 후 행선지 묻고 끝이다. 재미있었다.

시애틀의 상징이 뭘까... 도시마다 흔히 타워를 상징으로 하고 있다.
시애틀도 예외는 아니어서 도시를 소개하는 광고에  늘 이렇게 Space needle 이라고 독특하게
이름붙인 타워가 포함된 도심 사진을 내 보낸다.

도시의 상징은 타워다. 그런데 이 타워는 60년대에 지어진 것인데
EXPO 조형물이라 한다. 그러나 먼 미래를 내다보며 원반형 디자인을 하여
마치 UFO와도 같은 모양의 본체가 needle 이라 불리는 기둥위에 얹혀져 있는 독특한 형태이어서
몇십년이 지낫음에도, 그리고 고층 빌딩의 신축으로 그 높이가 상대적으로 낮아 졌음에도,
일부러 그랬겠지만 타워 주변에 공간을 확보해주는 도시 디자인에 따라 
전혀 올드패션으로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에 비해 캘거리 타워는 디자인에서 그리 나쁘진 않지만
주변에 초고층 빌딩이 들어서는 바람에 도심 타워로서의 기능이 완전히 상실되어
캘거리의 상징으로서의 의미가 퇴색한 것과는 무척 대조가 되었다.

시장은 물건을 사고 파는 곳이다.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존재한다.
홀로 살아갈 수 없는 공동체적 존재인 인간들의 원초적 필요에 의해 탄생한 시장..
나눔과 공동운명체로서의 진한 정이 배어있는 곳이다.

그러나 오늘의 시대에 이와 같은 소박한 의미를 담은 시장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현대 도심의 시장은 다양한 형태의 부가 기능이 추가 되어
필요를 사고 파는 나눔 공동체로서의 특성보다는
오히려 자본주의 경제의 전시장으로서의 기능과 공급자 중심의 필요창출 기능이 중심이 되어 있다.
이런 구조 속에서는 따뜻한 주고 받음 보다는 일방적인 구매행위 혹은 판매 행위만이 있을 뿐이다.

시장으로서의 왁자지끌한 모습, 무질서한 가운데의 다양한 소리들과 부산한 움직임,
그 속에서 갖가지 인간 군상들의 다양한 삶들이 만들어 내는 공동운명체적 친근함은
더이상 찾아 보기 힘들게 되었다.

Pike Place Market 은 사람 냄새 팍팍 풍기는 옛시장에 대한 현대인들의 향수를 겨냥하여
전략적으로 보존되고 지켜진 냄새가 가득한 곳이었다.
First Starbucks store 가 있는 곳이라는 광고 카피가 오히려 전통시장으로서의 자연스런 기능보다는
관광객을 유인하는 듯한 냄새를 느끼게 했다.

무엇보다 시장 입구에 자리 잡고 있는 요란한 수산물 가게는 어물 상점이라기 보다는
한마디로 시장 전체를 대표하는 호객꾼 같았다.

역시 그들이 파는 King Crab leg 등 각종 어패류들은 값이 무지 비쌌다.
관광객들을 털어 먹고 사는 시장..

수많은 상점들이 다양한 물건들을 팔고 있었지만
정작 시애틀 시민들에게는 별반 관심을 끌지 못할 것들로 보였다.
다만 꽃가게는 예외였다.

우리 또한 어쩔 수 없는 관광객이었던 지라 이 회사 자체는 혐오하지만
스타벅스 1호점을 가보지 않을 수 없었다. 커피 맛은 좋았다.

시애틀 여행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디너 크루즈. 아르고시라는 이름의 중형 유람선을 타고
시애틀 연안을 항해하며 멋진 저녁 식사를 했다.
밤이 깊어가며 시애틀의 잠못 이루는 야경은 참으로 특별한 추억을 남겼다.
멀리 스패이스 니들이 멋졌다.

습기가 많은 도시 답게 주택가는 온통 나무들로 뒤덮여 있었다. 마치 숲속에 사는 듯,
울창한 나무들이 집들을 에워싸고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건 참 부러웠다. 춥고 건조한 캘거리가 상대적으로 밋밋하게 여겨져서..

영화 시애틀의 잠못 이루는 밤의 주무대였던 수상 가옥들..
Union Lake 라는 곳에 위치한 이 수상 가옥들은 기대와는 달리 많이 낡아 있었다.
하긴 영화 찍은 지가 15년도 더 되었으니 집들이 낡아 있음은 당연하겠지.
세월 이길 장사 있나..

우리가 시애틀같이 미국의 대도시, 특히 한국 교민들이 많이 사는 곳을 여행하는 큰 즐거움 중의 하나는  제대로된 한국 음식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시애틀에도 꽤 많은 한국 교민들이 살고 있는지라
이렇게 단일 품목의 식당이 성업을 이루고 있었다.
설렁탕과 함께 순두부 백반은 시애틀에서 맛본 훌륭한 한국음식이었다.

여행의 빼놓을 수 없는 기억, 어떤 여행을 떠올리더라도 생생히 살아 가슴을 설레이게 하는 추억은
바로 '길'에 남아있다. 이렇게 내 사는 땅, 지구의 한 켠에 놓여 있는 길 위를 무심코 달려왔던
'나'라는 '존재'의 '어느 날' 에 대한 애틋한 마음..

평화를 꿈꾼 채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그것이 유일한 꿈이어도..
소박한 호기심을 아는대로 채우며
삶의 작은 욕망들을 외면하지 않고 충분히 기뻐하고 한껏 감사하며
낯선 새로움에 반가이 부대끼는 작은 존재로 이름모르게 살아가는 한 영혼을  저 길위에 남겼음에..



 


왕십리 11-06-02 20:10
 
아, 나도 여행을 떠나고 싶어집니다.
이 기대감과 소망을 잘 갈무리했다가 반드시 저지르고 말아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아름다운 사진들과 함께 여행기 잘 읽었습니다.
뭉게구름 11-06-02 23:27
 
차타고 가는 여행 저두 좋아하는데... 흑흑... 해본지 오래됐어요... 씨애틀은 한번 가봤는데, 사진몇몇 장면은 생각도 납니다. 여행은 어디나 설레이는거 같아요. 세상에서 젤로 재밌는거 아닐까 생각도 들구요.

생각난김에... 내년 1월에 같이 로드트립하실분 일주일정도...  제가 생각하고 있는건 sundance film festival에 자동차로 가서 (위험한가?) 같이 자구,  같이 밥먹고, 같이 영화보구할 사람을 모집하는거죠. (저는 선댄스랑 궁합이 맞는지, 소장 디비디중 선댄스 관련작품이 많더라구요.) 2012 1월 20일부터 30일까지라고 그러구.. 저두 안해봐서 어떻게 ticket을 사고 그러는건지 그런거 잘 모르는데... 계획을 할려면 서둘러야 한다고 그러더라구요.

관심있는분들 우리 한번 얘기해봐요!

아참: 이건 패밀리트립이 아닙니다.
아참: 운전거리는 15시간이라고 합니다.
     
마당지기 11-06-03 00:06
 
로드트립에 영화제라, 이거 솔깃하는 제안인데요. 아주 재미있을 것 같구요.
가시면 저는 껴들랍니다. ^^
          
뭉게구름 11-06-03 01:24
 
마당님 가신다면 실행해서 옯기죠. 사실 한국에 영화를 좋아하는 제 친구를 꼬실라고 했는데, 이게 비현실적이라서 말이죠.

만일 땡기면 빨리 방이라도도 잡아야 될거 같습니다. 싼건 18마일 떨어진게 남아 있는데... 4명이 가면 딱 좋은데...

https://destination.sundance.org/reservations/Step2.asp

그리고 여기 간다면 크로스 컨트리 스키도 반드시 가지고 가야 될거 같습니다.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죽이는 여행입니다. 매일 크로스 컨트리,  "쌩쌩한" 독립영화 또는 도큐 두편, 그리고 저녁에 와인... 이거 추진하죠?
     
왕십리 11-06-03 10:10
 
ㅠ.ㅠ
부러워라... 그냥 과감히 두분이 지르실려나?
언제나 이렇게 자유롭게 훠얼훨 날아다녀 볼런지... 환상적인 꼬드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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